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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영주 가볼만한곳 소수서원 선비촌 경북여행 주변관광지

by 쏘앤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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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가볼만한곳 소수서원 선비촌 국내여행 당일코스 경북영주여행

소수서원 입장료 성인 :3,000원 청소년:2000 원 어린이 :1000원
관람시간: 9시~5시 (6월~8월만 9시~6시까지)
주차 무료: 선비촌 주차하고 소수서원까지 대략 700m 정도 되는 거 같아요
대중교통 영주부석사 28번, 27번 ,127번, 1시간 거리(소수서원&선비촌)
소수서원 주변 부석사 14km 20분거리 ,무섬마을 26km 30분거리 소백산 17km 25분거리

소수서원 선비촌 주변 가볼만한곳 소백산 , 무섬마을, 영주부석사

경북여행 영주 부석사 10월 가볼만한 곳

경북 영주 부석사 가을에 단풍사진 찍기 좋은 곳 안녕하세요 여행을 좋아하는 쏘앤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곳은 영주 부석사인데요 사계절이 다 이쁜지만 가을 가을이 단연코 베스트입니다 입

lou-salom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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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행을 좋아하는 쏘앤입니다 오늘 여행지는 영주 선비촌&소수서원 이랍니다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선비문화 중심지 영주에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지금의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 생활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여 수신제가 입신양명 거무구안 우도불우빈의 4개의 구역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선비촌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요 양반가 기와가 일곱 가구, 초가가 다섯 가구 , 정려각 2동 성황 상1동 누각 1동 정사 2동 선비촌은 고택 체험도 가능한 곳이랍니다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쏘앤은 이런 고풍스러운 고택을 너무 좋아라 해서 여행지에서 고택 코스 지나치지 않고 다니는데요 기와지붕의 선 ,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나무 아득한 마당 돌계단의 조화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약장
영주 선비촌 약장

약장인데요 옛날에는 집집마다 이런 약장이 집에 있었을까요 참 탐이 납니다 쏘앤 집에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영주 선비촌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건너 죽계교를 지나면 소수서원에 이릅니다 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돌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도 있습니다

죽계교
죽계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중종 37년에 성리학자 회헌 안향선생을 흠모하던 풍기군수 주세붕이 회헌 안향선생이 나고 자란 곳에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백운동서원을 건립, 그 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조정에 건의 소수서원 이란 사액을 받게 되었는데요 사액이란 토지 책 노비를 하사 받아 지금으로 말하면 정부지원으로 사립학교를 건립했다는 이야긴 거 같아요 또 편액도 왕으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편액이란 지금의 현판 같은 거 같아요 액자에 글을 써서 걸라고 주었다고 하는 거 보니까 정부지원받아 지방 사립학교가 건립되었다고 이해했어요

경렴정

소수서원, 죽계천이 흐르는 자연을 벗 삼아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을 하던 곳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라고 하네여 그 당시 유생들의 풍류와 멋을 엿볼 수 있는 것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는 530년 된 보호수

직방재, 일신재

경렴정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안팎을 곧게 하라는 뜻을 지닌 직방재 나날이 새로워 자라는 뜻의 일신재 직방재와 일신재는 각각 동재와 서재로써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소수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달아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소수서원강학당내부

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소수서원 내에는 강학당 장서각 직방재 일신재 학구재 등 오래된 건축물이 들이 잘 보전되어 있고 국보 제111호인 회헌 초상과 보물 5점이 소장되어 있답니다

서원은 성균관, 향교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교육 기관으로 국립으로 전국 각 도시에 분배된 향교와 대비되는 사립학교로써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원은 교육 기능과 교화 기능을 그 양축으로 삼고 있었다 조선 중기 사대 사화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은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의 기능까지 통합한 서원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학구재-지락재-유생들의 기숙사
학구재,지락재(유생들의 기숙사)

학구재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한다 , 라는 뜻 지락재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 한 게 없다 라는 뜻을 갖고 있네요

직방재와 일신재

여기까지 쏘앤이 관람하며 공부한 내용을 옮겨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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